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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919 한겨레] 19살에 잡지 <창조> 창간한 김동인-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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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대…

등록일 19-02-14 10:08 조회 18,662
1일, 동경서 주요한 등과 함께 창간
이광수 계몽문학 극복 ‘순문학’ 표방
자금은 평양 지주 아들 김동인이 대
<창조> 창간의 주역인 평양 부잣집 아들 김동인군. <한겨레> 자료사진
<창조> 창간의 주역인 평양 부잣집 아들 김동인군. <한겨레> 자료사진

 

<편집자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독자 여러분을 100년 전인 기미년(1919)의 오늘로 초대하려 합니다. 살아 숨쉬는 독립운동가, 우리를 닮은 장삼이사들을 함께 만나고 오늘의 역사를 닮은 어제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려 합니다. <한겨레>와 함께 기미년 191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준비, 되셨습니까?

 

 

 

지난 1일, 일본에서 조선어로 된 문학잡지 <창조>가 창간되었다. 조선어문학 동인지로서는 최초인 <창조>의 창간 주역들은 ‘2·8 독립선언’ 대표위원 중 한 명이었으나 신병을 이유로 사퇴한 일본 아오야마학원 문학부의 전영택(25)씨와 김동인(19·가와바타화숙 재학생)·주요한(19·메이지학원 재학생)군 등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광수(27·와세다대 철학과 재학생)씨가 설파한 ‘계몽문학’에 반대하며 ‘순문학’을 표방하고 나섰다. 소설 <무정>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선배세대인 이광수 문학의 극복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김군이 “4000년 역사 이래 최초의 신문학의 꽃봉오리”라고 자부했던 <창조> 창간호에는 자신의 단편소설 ‘약한 자의 슬픔’, 주요한군의 신시 ‘불놀이’, 최승만씨의 희곡 ‘황혼’ 등이 실렸다. 특히 최씨의 작품은 자유연애를 주장하는 아들과 전통적인 혼례를 중시하는 아버지의 갈등을 흥미롭게 묘사했다. “김: (……) 참혼인을 하려면 두 사람 사이에 원만한 이해와 열렬한 사랑이 있어야 하지요. 이것이 없는 혼인이라면, 벌써, 이것은 참혼인이 못되겠지요./ 부: 이놈아 살면 사는 것이지, 참혼인은 어떤 것이요 거짓 혼인은 어떤 것이란 말이냐. 네 소리는 하나두 모르겠다. 열렬한 사랑이라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열렬한 사랑이란 말이냐.” 이광수 문학의 극복을 내세웠으나 젊은이들답게 자유연애만큼은 이광수의 계보에 있다는 해석이 나오게 하는 대목이다.

 

최초 문학동인지 <창조> 창간호. <한겨레> 자료사진
최초 문학동인지 <창조> 창간호. <한겨레> 자료사진
주요한군이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전씨 등이 ‘창조’ 동인으로 참여했으나 재정적 부담은 부잣집 아들인 김동인군의 몫이었다고 한다. 평양 대지주의 아들인 김군은 12일 일본 히비야공원에서 열린 동경 유학생들의 독립선언 시위에 참여해 경찰에 연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문헌

 

김지영 지음, <매혹의 근대, 일상의 모험>(돌베개·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