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창간의 주역인 평양 부잣집 아들 김동인군. <한겨레> 자료사진
<편집자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독자 여러분을 100년 전인 기미년(1919)의 오늘로 초대하려 합니다. 살아 숨쉬는 독립운동가, 우리를 닮은 장삼이사들을 함께 만나고 오늘의 역사를 닮은 어제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려 합니다. <한겨레>와 함께 기미년 191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준비, 되셨습니까?
지난 1일, 일본에서 조선어로 된 문학잡지 <창조>가 창간되었다. 조선어문학 동인지로서는 최초인 <창조>의 창간 주역들은 ‘2·8 독립선언’ 대표위원 중 한 명이었으나 신병을 이유로 사퇴한 일본 아오야마학원 문학부의 전영택(25)씨와 김동인(19·가와바타화숙 재학생)·주요한(19·메이지학원 재학생)군 등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광수(27·와세다대 철학과 재학생)씨가 설파한 ‘계몽문학’에 반대하며 ‘순문학’을 표방하고 나섰다. 소설 <무정>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선배세대인 이광수 문학의 극복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김군이 “4000년 역사 이래 최초의 신문학의 꽃봉오리”라고 자부했던 <창조> 창간호에는 자신의 단편소설 ‘약한 자의 슬픔’, 주요한군의 신시 ‘불놀이’, 최승만씨의 희곡 ‘황혼’ 등이 실렸다. 특히 최씨의 작품은 자유연애를 주장하는 아들과 전통적인 혼례를 중시하는 아버지의 갈등을 흥미롭게 묘사했다. “김: (……) 참혼인을 하려면 두 사람 사이에 원만한 이해와 열렬한 사랑이 있어야 하지요. 이것이 없는 혼인이라면, 벌써, 이것은 참혼인이 못되겠지요./ 부: 이놈아 살면 사는 것이지, 참혼인은 어떤 것이요 거짓 혼인은 어떤 것이란 말이냐. 네 소리는 하나두 모르겠다. 열렬한 사랑이라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열렬한 사랑이란 말이냐.” 이광수 문학의 극복을 내세웠으나 젊은이들답게 자유연애만큼은 이광수의 계보에 있다는 해석이 나오게 하는 대목이다.
최초 문학동인지 <창조> 창간호. <한겨레> 자료사진
△참고문헌
김지영 지음, <매혹의 근대, 일상의 모험>(돌베개·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