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 / 독립견문록, 임정을 순례하다 ① 상하이 ◆
석조 계단 앞에 서자 소름이 전신을 훑었다. 중국 금강그룹이 운영하는 상하이 메트로폴로 호텔에서 2층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유일한 계단이다. 상하이기독교청년회(상하이 YMCA)가 현재 이 호텔의 건물주로, 아직 옛 모습 그대로란다. 100년 전 상하이에서 꽤 높은 축에 속하던 이곳에서는 세월에 마모된 계단만이 1932년 이곳을 지나간 누군가의 발걸음을 여전히 증명하고 있었다. 상하이기독교청년회관은 백범 김구와 매헌 윤봉길이 의거 하루 전날인 1932년 4월 28일 거사를 논의한 장소다. 계단을 오르던 백범과 매헌의 심정을 상상하니 먹먹해져 닳고 닳아 문양이 거의 지워져버린 난간의 석조 조형물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올랐다. 2층 레스토랑 입구에서 오픈 준비에 한창이던 웨이트리스에게 `이곳이 한국의 독립운동 유적지`라고 설명했지만 "잘 모르겠다. 들은 바가 전혀 없다"는 입이 찬 대답이 돌아왔다.
그해 4월, 윤 의사의 일정과 동선은 다음과 같았다. 26일,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선서식을 거행했다. 27일, 훙커우공원(현재 루쉰공원)을 사전 답사하며 연단이 서는 자리와 사열대 방향을 염탐했다. 이날 저녁, 양복을 입은 채 한인애국단 선서문을 가슴에 부착한 뒤 카메라 앞에 서서 기념촬영을 했다. 28일, 상하이기독교청년회관에서 백범과 `최후의 오찬`을 거행했다. 당시 건물로선 상하이 조계지 내 최고 식당에서 한 끼니를 해결하며 민족의 앞날을 모색했다. 식사 뒤 매헌은 훙커우공원에 들고 갈 일장기를 구입해 숙소로 돌아왔다.
윤봉길 의거 당일인 29일 아침의 행적까지 더듬고자 `원창리 13호`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본명이 김정묵인 원창리 13호의 김해산 집에서 백범과 매헌은 `고깃국`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백범 부탁으로 상하이 중국군 병공창의 병기주임 김홍일이 비밀리에 준비한 폭탄 두 개가 전달된 장소도 바로 이곳이다. 굳이 폭탄 모양이 도시락과 물통이었던 건 일제가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은 도시락과 물통, 일장기만 가져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29일 오전 7시, 김해산의 집에서 나와 도로로 향하는 길, 택시에 오르려던 매헌은 백범에게 회중시계를 맞바꾸자고 제안한다. "이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에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이니 저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앞으로 한 시간밖에 쓸 데가 없으니까요." 원창리 13호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의 도로에 우두커니 섰다. 훙커우공원 방향으로 향하는 택시 한 대가 지나갔다. 매헌도 그날 아침 이 길 위의 택시 안에서 방금 들은 백범의 마지막 한마디를 곱,십었을 것이었다.
"윤군,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그 뒤 다섯 시간이 지난 오전 11시 40분께 훙커우공원 연단은 굉음과 비명에 휩싸였고, 역사의 물줄기는 역류하기 시작했다.
[상하이 = 김유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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