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919 한겨레] 최남선 vs 윤치호… 파리강화회의 논쟁-한겨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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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28&aid=000…[5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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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회의 개최 앞두고 최 “외교독립론 지지” 윤 ”순진한 발상” 갈려 <편집자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독자 여러분을 100년 전인 기미년(1919)의 오늘로 초대하려 합니다. 살아숨쉬는 독립운동가, 우리를 닮은 장삼이사들을 함께 만나고 오늘의 역사를 닮은 어제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려 합니다. <한겨레>와 함께 기미년 191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준비, 되셨습니까? 무오년(1918) 1월8일, 미 대통령 윌슨은 의회 연설을 통해 ‘14개조 평화원칙’을 발표한 바 있다. 조선 민족과 관련된 내용은 5조 민족자결주의로 ‘주권 회복을 포함한 식민지의 모든 요구에 대한 공정한 조정과 처리’를 강조한다. 민족의 운명은 민족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주요 전승국이자 세계 최고의 강대국인 미국 대통령이 밝힌 원칙이라는 점 때문에 작년 11월, 세계대전이 끝이 나면서 전후 식민지 처리의 대원칙으로 더욱 조명을 받고 있다. <한겨레>가 신년호에서 보도했듯 신한청년단을 위시한 민족진영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자 김규식(38)씨를 파리 강화회의 특사로 파견하기로 하였다. 서구열강에 식민지 조선의 가혹한 현실과 일본 무단통치의 부당함을 알려 민족독립의 계기를 외부로부터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현실주의자 윤치호씨. <한겨레> 자료사진 파리 강화회의가 독립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인사로는 잡지 <소년>과 <청춘>을 발행하며 실력양성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최남선(29)씨를 꼽을 수 있다.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부국강병의 길로 치닫던 1906년에 일본 유학을 떠난 최씨는 남들이 하는 법률·정치·경제가 아닌 문학과 역사를 전공했다. 이를 토대로 귀국 후에 출판 사업을 벌여 1910년대 이미 조선 문화계의 대표주자가 된 인물이다. 세계대전을 겪으며 약육강식의 사회진화론에 대한 반성이 이뤄진데다 민족자결주의로 대표되는 인류평화와 평등의 가치가 새로운 시대정신이 됐기 때문에 조선 민족의 뜻을 파리 강화회의에 전한다면 독립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원로 지식인 윤치호(54) 기독교청년회(YMCA) 총무는 이런 세계정세 인식이 순진한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윤 총무는 “조선의 무능한 정부와 일본의 유능한 정부 사이에 맺어진 을사조약은 강대국에 매우 인상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까닭에 조약 이후 조선인의 상황이 나빠졌다는 것을 강화회의에 알리기 어렵다”며 “조선은 일본의 생명선이기 때문에 군사적 힘으로 강요하지 않는 한 일본이 조선을 내놓지 않을 테고 미국과 영국 또한 불쌍한 조선을 위해 일본과 전쟁을 치르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정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윤 총무는 총독부가 조작한 105인 사건(1912)으로 옥고를 치르고 전향한 뒤 타협주의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파리 강화회의가 독립의 발판이 될지 강대국들의 나눠먹기 판이 될지 불란서의 회담 결과가 주목된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참고문헌 -류충희, ‘1910년대 윤치호의 식민지 조선 인식과 자조론의 정치적 상상력’, <동방학지>(2016) -김상태 편역, <윤치호 일기>(역사비평사·2001) -류시현, <최남선 평전>(한겨레출판·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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